1986년 청계산 자락의 수려한 자연 속에 둥지를 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개관 40돌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지난 7월 개막하여 가을의 문턱에서 깊이를 더하고 있는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은 단순한 연대기적 회고를 단호히 거부한다. 전시는 김태수 건축가가 설계한 성곽형 석조 건축과 미술관을 에워싼 자연, 그리고 비물질의 매체인 ‘빛’을 삼각축으로 삼아 미술관의 본질적 경험을 재정의한다.
과천관은 그동안 서울 도심의 서울관이나 덕수궁관에 비해 물리적 접근성이 낮다는 비판을 종종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지리적 고립감을 오히려 깊은 명상과 예술적 몰입의 축복으로 전환해 낸다. 관람객이 미술관으로 진입하는 야외 숲길에서부터 원형 램프 코어를 거쳐 전시실로 이어지는 동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각적 시퀀스로 작동한다.
빛의 숭고미를 구현한 제임스 터렐의 신작 소장품
이번 프로젝트의 정점은 새롭게 공개된 세계적 ‘빛과 공간의 거장’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설치 작업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이다. 완벽히 통제된 암흑 공간을 지나 마주하는 터렐의 빛의 캔버스는 물질적 경계가 사라진 순수한 지각의 심연을 선사한다.
벽면에 투사된 부드러운 단색광은 평면처럼 보이지만, 한 발짝 다가서는 순간 무한한 깊이를 지닌 안개형 허공으로 변모한다. 빛을 관조하는 행위 자체가 관람객의 신체 감각을 일깨우며, 물질적 소유에 집착하던 시선을 탈각시키고 존재의 여백을 마주하게 만든다.
건축적 공용 공간을 전복하는 동시대 미디어 설치
전시는 화이트큐브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미술관의 통로, 로비, 계단 등 공용 공간으로 과감히 확장된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와 김아영은 불규칙하게 점멸하는 조명과 사운드 풍경을 통해 미술관 건물을 살아 숨 쉬는 유기체적 생명체로 둔갑시킨다. 유리창을 투과해 쏟아지는 과천의 자연광과 인공적인 전자 신호가 교차하며 관람객의 공간 인식을 끊임없이 교란한다.
야외 조각공원에서 전개되는 《머무는 자리》 프로젝트 역시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를 꾀한다. 40년간 계절의 순환을 지켜봐 온 거대한 조각품들 틈새로 마련된 쉼터와 공공 파빌리온은 예술 작품을 올려다보는 대상이 아닌, 관객의 일상적 사유가 머무는 플랫폼으로 안착시킨다.
미술관의 미래: 자연, 건축, 인간의 유기적 공존
《빛의 상상들》이 성취한 가장 중요한 미학적 지점은 과천관 특유의 장소성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최고의 큐레이션 자산으로 복권시켰다는 점이다. 도시의 속도전에서 벗어나 자연의 호흡에 발을 맞추고, 빛이라는 비물질적 언어를 통해 건축의 무게를 덜어낸 기획은 공공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미래적 태도를 웅변한다.
전시 정보
- 전시명: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
- 전시 기간: 2026년 7월 10일(금) ~ 2026년 11월 29일(일) (일부 야외 및 소장품 설치는 2027년 10월까지 상설 운영)
- 전시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관 및 야외 조각공원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 참여 작가: 제임스 터렐, 필립 파레노, 구정아, 김아영, 이반 나바로 등 국내외 동시대 작가 및 건축가
- 관람 시간: 화~일요일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3,000원 (과천관 통합 관람권 기준 / 만 24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
- 예매 및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 사전 예약 및 현장 발권 (02-2188-6000)



